벌써 1년이 지났네요.
이 글은 작년 이맘때 제가 겪은 교생실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음... 먼저 용어를 정리하고 시작할까 합니다.
교생실습이라고 흔히 말하는 그 것.
그런데 교생은 교육실습생의 준 말이므로 교생실습은 교육실습생실습으로 어색한 말이 됩니다. 뭐 그렇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용어를 좀 바꾸고 싶은 생각이 조금 있습니다.
교육보다는 함께배움, 실습은 몸소배움으로 쓰고 싶은 것이 욕심입니다. 교육실습생은 예비샘으로 하고요. 교생실습이라는 어색한 말은 예비샘몸소배움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왕이면 선생님도 샘으로...
이후부터는 이렇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헛갈리지마세요ㅎ.
이 글과 제 경험이, 좋은 것도 잘한 것도 아니지만
예비샘몸소배움을 나가는 예비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뻔한 이야기 일 수 도 있어요.
첫 시작은
지금 예비샘몸소배움을 하고 계시는 예비샘들에게는 해당되지는 않는 이야기지만, 앞으로 예비샘몸소배움을 준비해야하는 분들에게 한번쯤 이야기 해주고 싶은 부분입니다.
바로 학교선택입니다
보통 예비샘몸소배움을 나가기 수개월전에 학교를 선택해야하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때부터 예비샘몸소배움은 시작입니다. 첫단추이지요.
저는 그 당시 대안학교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제도권 공교육의 문제점을 찾고 비판도 하고... 대안을 이야기 했습니다. 치열하게 고민도 토론도 했었지요. 자연스레 언젠가 대안학교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대안학교에 문제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공부 속에서 행복해하는 학생친구들과 샘들을 보고... 그들을 닮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예비샘몸소배움학교를 대한학교냐 제도권 공교육이냐를 두고 적지 않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글로는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는데... 정말 적지 않은 고민 끝에...
제도권 안 공교육을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몸소체험하고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안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대안학교와 교육에 대한 확신을 심고 싶었습니다.
아... 한 고민 끝났다 싶은데 또 고민이 찾아옵니다. 중학교냐? 고등학교냐? 역시나 적지 않은 고민끝에...
이왕 치열하게 고민할 거 성적과 수능시험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곳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음... 제가 생각하기에 예비샘몸소배움은 앞으로 샘이 될 자신의 모습을 견주어보고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예비샘몸소배움 이후 자신의 진로를 바꾸는 예비샘들도 종종 봅니다. 물론 예비샘몸소배움 이후 샘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확신을 가지고 더욱 열심이신 예비샘들도 많이 보지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샘이 되기 위해서 최소 2-3년동안 꿈꾸고 공부한 것이 예비샘몸소배움학교에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4주만에 말이지요.
물론 개인적인 깊은 고민에서 바꾼 것이기에 백번만번 존중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선택을 잘 못 해서... 그것이 결정적이라면...?
단순히 모교라서, 재단소속학교라서, 아는 사람이 있는 학교라서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과 미래를 로또에 맞기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선택의 기준은 다양하겠지요. 자신이 존경하는 샘이 있는 곳. 독특한 다른 수업방법을 쓰고 있는 학교. 전교조샘의 비율이 높은 곳. 시설이 좋은 곳.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 등등등.
학교가 모교나 아는 사람이나 재단 같은 줄이 없으면 안받아 준다고요?
간절하지 않았겠지요.
공간이라는 것이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만든다는 것.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라는 공간 선택 중요합니다.
점수보다는 샘으로써의 나의 모습이 행복한가? 행복할것인가? 를 고민하자
앞서 잠깐 언급했는데... 예비샘몸소배움은 앞으로 샘이 될 자신의 모습을 견주어보고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툭! 하고 이야기하면, 이 길이 내가 갈 길인가? 를 고민하는 시간이지요. 내가 샘이 되면 나는 행복할까? 학생친구들과 계속 되는 만남에서 나는 어떠한 모습일까?
뭐...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겁니다.
예비샘몸소배움을 지금 이 순간 예비샘들이 하고 있는 것이지만, 예비샘들의 머리와 가슴은 먼 훗날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 정도 고민을 하게 되면, '점수'는 무시되어야 합니다. 무시됩니다.
바로 대학교 혹은 대학원 과목으로서 '예비샘몸소배움' 점수 말입니다.
A+? A? B?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중요한 것!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과목으로서 '예비샘몸소배움'점수는 몸소배움학교의 교장샘, 교감샘, 연구부장샘, 담임샘의 점수 총합으로 계산됩니다. 다들 잘 주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마... 설마... 잘 안 주신다면, 예비샘몸소배움 한번 더 하지요. 뭐...ㅎ
몸소배움학교의 교장샘, 교감샘, 연구부장샘, 담임샘이 적당히 성적을 잘 주시는 이유는, 절대로 단순히 '한달동안 수고했는데...'가 아닙니다. '점수걱정하지 말고 치열하게 고민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비샘몸소배움대표나, 연구수업에 목메이지 마십시오.
제가 예비샘몸소배움나가기전 대학원에서 예비샘들을 모아놓고 수업을 했었는데, 그때 어떤 교수가 그러시더군요.
'우리 대학교를 위해 대표와 연구수업은 맡아 주십시오'
훗.
제발... 자신에게, 자신의 미래에... 우리 학생친구들에게 목메이시길 바랍니다.
훌륭한 샘들 찾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예비샘몸소배움기간동안 너무나도 훌륭한 샘들을 만났습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많이 배웠지요.
개인적으로 제도권 안 공교육의 문제점을 몸소체험하고 확인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대안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대안학교와 교육에 대한 확신을 심자고 들어간 예비샘몸소배움에서 전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 졌습니다.
지금 저는... 공교육안에서 대안과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아무튼 제가 다소 날카로운 마음으로 임했던 예비샘몸소배움에서 그 날카로움이 달아없어진 것은 분명 훌륭한 샘들 때문이었습니다.
학생친구들을 위해서 인간적으로, 교육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시는 샘들.
학생친구들을 위해 토론하고 교재를 만드시는 샘들.
학교의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는 샘들.
누구든 함께 하자고 말씀하시는 샘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찾기는 쉽습니다. 멀리서도 빛이나거든요. 꼭 찾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친구들과 친구되기
한창 예비샘몸소배움기간이었지요. 지난 4월 19일이었는데, 전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419행사를 하고, 교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라는 것은 자칫, 아니 분명히 학생친구들에게 폭력으로 작용합니다. 권위와 권력때문이지요. 선생님은 항상 옳고 맞는다는 무언의 무엇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대안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말대신 '샘'이라는 표현을, 이름대신 별명을 부르지요.
학생친구들위에 샘이 있는 것도, 샘 아래 학생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믿음직한 친구말이죠.
뭐 친구... 믿음직한 친구가 되면 이런저런 자기 속마음도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뭐... 친구가 공부가르쳐주면 더 쏙쏙 들어오고 그러잖아요.
학생친구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 예비샘과 샘이 먼저 내려놓고, 버리면 될 듯 싶습니다. 예비샘, 선생님, 샘이란 용어속에 있는 힘(?)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체육시간을 활용해서 학생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체육시간이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릴 수 있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없더라고요. 아쉽지만 어떻게 합니까? 체육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함께 땀을 흘렸으면 좋겠습니다. 음... 경험으로 이제 개인적으로 확신을 하는 건데, 몸놀이 그러니깐 함께 땀을 흘리는게 학교현장뿐만아니라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듯 합니다. 전 옆반에서 체육복을 빌리고,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샘에게 축구화를 빌려서 함께 축구를 했는데요. 함께 옷을 갈아입고 신나게 뛰고, 서로 화이팅해주고,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말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간 것 같습니다.
함께 옷을 갈아입고 신나게 뛰고, 서로 화이팅해주고,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말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간 것 같습니다.
음... 또 하나...
예비샘몸소배움을 하면서 약간의 환상이 담당반친구들과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겠지? 였습니다.
음... 지금 돌이켜생각하면, 예비샘뿐만아니라 담임샘들도 반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하는 듯 합니다. 예비샘은 더 힘들지요. 그래서 담임샘이 수업시간때 수업말고 이런저런 수업외적인 말을 많이 할 수 밖에없구나 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그래서 고민하다가 매일아침 학생친구들보다 먼저 교실에 들어가서 편지한장씩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도하고, 옛날 고등학교때 이야기도 하고, 학생친구들이야기도 하고...
한장한장씩 쓴 편지를 교실뒤 게시판에 붙여놨었는데, 예비샘몸소배움이 끝날때 쯤엔 꽤나 두껍더군요.
학생친구들이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 띄엄띄엄 읽었겠지요.
교생통신. 어제 술먹은 이야기, 고등학교때 이야기, 삐딱해지자는 이야기... 솔직하게
하지만 그들은 알았을 겁니다. 예비샘이나 샘이나 똑같은 사람이란 거...
난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보통 4주동안의 예비샘몸소배움은 2주씩 나뉘어서 진행됩니다. 2주는 참관을 나머지 2주는 수업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 수업 또한 하루에 1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보통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나 담임샘의 생각에 따라 이 기준은 매우 유동적이지요.
4주내내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예비샘몸소배움기간이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중간고사에 대한 불안으로 담임샘이 수업을 하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4주내내 문서처리 및 시험체점 및 참삭을 하는 예비샘도, 수업도 문서처리도 아닌 다른 일에 동원되는 예비샘도 있다고 합니다.
전, 그 규정(?)에 대체로 충실했던 듯 싶습니다. 수업을 10번 했을까요? 반마다 들어가는 것은 한번 뿐. 겹치는 반도 없었고요.
고민이 들었습니다.
단, 한번 밖에 없는 이 친구들과의 수업인데... '통계와 지도'부분을 이야기할 것인가?
한 샘을 찾아가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라는 질문에... '행복' 이라고 대답하고...
함께 고민하다가... 한 방송에 나왔던 다큐를 편집해서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해보는게 좋겠다라고 모아졌습니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좋아했던 학생친구입니다. 만화가가 되고싶다는 친구. 아직 열정 포기 하지 않았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한 것인지 못 한 것인지.
학생친구들에게 너무나도 견고해보이는 현실의 벽을 우습게 무시하게 하고, 마음만 설레이게 한 것은 아닌지... '통계와 지도'를 이야기하면서, 나도 학생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법을 몸소배웠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음... 또... 4.19행사였는데요. 위에서 '저게 교생이야'라고 들었다고 했잖아요. 바로 그 날.. 입니다.
제가 예비샘몸소배움을 한 학교는 매년 4.19기념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전교생을 모두 운동장에 모이게 한 후, 한반당 2줄로 세우고, 앞으로나란히, 좌로돌아, 앞으로나란히를 반복하여 바둑판으로 만들고, 교장샘에게 차렷 경례를 시키고, 4.19당시 학생이었던 선배에게 4.19이야기를 오-랫동안 듣고... 잠시묵념을 하고, 다시 차렷경례를 하고...
너무 화가 많이 나더군요. 4.19가 무엇인지이야기하지 않고 당시 그들의 무용담만 이야기한것도 그렇지만, 4.19행사를 왜 운동장에서 바둑판이 되어서 차렷,경례를 해야하는지... 그리고 예비샘과 샘들은 떠들거나 움직이는 친구들에게 눈총을 쏴야하는지...
4.19행사인데 말이지요.
너무 흥분했었습니다.
교실로 들어와서... 온갖 욕을하면서... 4.19의 시작은 지금 단상위에서 영웅처럼 이야기하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같은 학생이었다고, 바둑판이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과 흐름이었다고... 바로 민주주의였다고... 학생친구들에게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4.19행사 이후 약간 시간이 남는지... 학교방송에서 '금연'교육을 했었는데... 또 흥분되어서 난리를 쳤지요. 몸에 나쁘다면서... 샘들은 왜 피는데? 샘들 폐는 슈퍼울트라야? 학생친구들에게 담배를 피지 말라면, 그들도 피지않는게... 맞지 않을까? 뭐... 그렇게 또 뱉고 말았습니다.
역시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졌는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처럼 흥분해서 말하는 것보다...
학생친구들 입장에서,
다시 오지 않을, 얼마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음...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음...
아... 이런 것도 이야기했는데...
교과서를 들고...
'이 책은 반만 믿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도...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이야기를 해줄까에 대한 고민은 각자 많이 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한가지 더
예비샘몸소배움하기전 학교에서는 명찰과 실습일지를 줍니다. 실습일지야 그렇다 쳐도, 명찰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이름이 떡하니 써있는 건 물론, 눈에 확! 띄게 학교마크도 있더군요. 그리고는 앞에서 이야기한 연구수업을 맡아달라던 그 교수가 역시 말합니다.
항상 달고 다녀달라고...
전, 대학교이름이랑 마크를 케로로빵스티커로 붙여버렸습니다. 케로로대학교 출신이 되었지요.
학생친구들은 다 압니다. 저 샘이 어디 대학이고 이 샘은 어디 대학원인지...
그런데, 물어보지요.
'샘 케로로대학교다녀요?' 또는 '샘 왜가려요?'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 해줍니다.
'응. 나 기로로랑 동기 잖아.' 또는 '대학이 중요한거 아니잖아?'
정말정말 예비샘몸소배움 명찰에 학교이름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비교육적입니다.
마무리...
아직도 전 예비샘몸소배움을 잘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글도 많이 부끄럽고 교육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겠지요.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이 아쉬운 부분도 있고, 후회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물론 나름 잘했다고 뿌듯해 하는 부분도 있지요. '내가 샘으로서의 꿈에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것도 많지만 차차 채워나가면 되겠지요. 함께 배우면서요.
많은 고민, 많은 생각으로 뿌듯한 예비샘몸소배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
원래 이 글을 계획 할 때에는 그저 제가 겪은 예비샘몸소배움을 쓱싹쓱싹 적어내려가려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쓰다보니깐 예비샘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라는 식의 글이 되어버린 거 같네요.
음... 저도 뭐 잘한것도 없고, 지금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어떻게 말을 할 수 없지만, 아직도 적지않은 예비샘들이 예비샘몸소배움은 그저 지나가는 통과의례, 대학교 혹은 대학원에서의 필수수업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에 이렇게 된 듯 합니다. 하기야 그것이 우리 예비샘들의 문제이겠습니까? 우리교육의 심각한 문제의 한 표출이겠지요. 마무리와 함께 죄송하다는 말도 함께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헐떡고개를 반쯤 올라오면서부터 조금씩 보이는 이 벽화는 어느새 저에게는 알 수 없는 자부심이었습니다.
그 건물에서 공부를 하고, 했던 것이 우쭐하기도 했었지요.
모르겠습니다.
그 벽화를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보지도 않았던 것 같고, 골똘히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벽화가 마음속에 담겨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합니다.
아마도... 그 벽화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나봅니다. 어디선가 함성이 들리고, 절로 뭉클해집니다.
#1 우연히 만난 책속의 청년
벽화 <청년>을 이제서야 조금이라도 바라보자고 마음먹은 것은 '피맛골'자료를 찾다가 만난 책. <길섶의 미술> (손수호, 한울, 1999) 덕분입니다. 그 책에 '피맛골'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책을 넘기다 너무나도 낯익은 벽화를 만났고 그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해서 재빨리 복사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글자한글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에는 <청년>을 '운동권 벽화의 간판'이라고 설명했고, 평론가 유홍준의 말을 빌어 '전남대의 <5월항쟁도> 한국외대의 <통일의 꽃>등 미술운동의 수단으로 등장한 벽화가 아닌 민족미술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대중적 확산작업의 하나'로 미술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초세계적인 가치를 지향한다지만 결국 지배문화를 대변하는 모더니즘, 이를 거부하는 '커뮤니티아트'의 전형이라고도 말합니다.
20대 미술대학 학생들과 청년작가들의 그것은 벽화의 정치적 선전에 그 목적이 있었다. 시민 학생들에 대한 선전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1988년 제작된 경희대 문리대 건물의 벽화 <청년>은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과 민중 세상에 대한 염원을 두 주먹을 불끈 쥔 청년학도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벽화는 벽그림제작공동위원회(미술교육과‘생활미술놀이공동체’, 만화패 ‘한그림’, 그림패 ‘쪽빛’)를 구성하여 제작되었다. 설문조사를 통한 디자인이 학교 측과의 협상을 통해 최종안이 확정되고 5개월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처음에는 흰 페인트를, 그 다음은 검은 타르를 옥상에서 부어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게 하는 두 번의 훼손을 시켰다. 또한 1999년에는 학교 측이 벽화를 철거하려 했으나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강력한 반발로 저지되기도 하였다.
* 크 기 : 11m x 17m
* 제 작 : 벽그림제작공동위원회(미술교육과 ‘생활미술놀이공동체’ , 만화패 ‘한그림’, 그림패 ‘쪽빛’)
* 장 소 : 경희대 문리대 건물
* 내 용 : 6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과 민중 세상에 대한 염원을 두 주먹을 불끈 쥔 청년학도의 이미지로 표현해낸 이 벽화는 벽그림제작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제작되었다. 설문조사를 통한 디자인이 학교측과의 협상을 통해 최종안이 확정되어 5개월에 걸쳐 완성되었다. 완성된 벽화는 처음에는 흰페인트를, 그 다음은 검은 타르를 옥상에서 부어 벽면을 타고 흘러내기게 하는 두 번의 훼손을 겪게 되었고, 두 번의 복구작업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또한 99년에는 학교측이 벽화를 철거하려 했으나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강력한 반발로 저지 되었다.
경희대 벽화 ‘청년’은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현재 80년대 벽화운동 과정에서 그려진 대학 벽화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어 민주화 운동 및 벽화 운동 역사의 산 증인이 되고 있다.
* 출 처 : 박영균
그리고 그곳에는 당시 <청년>의 훼손과 관련된 몇 장의 사진이 함께 있었습니다. 한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아! 출처에 있는 박영균은 당시 <청년>을 그리던 학생중 하나였고, 지금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촛불소녀가 있습니다. 아직도 청년입니다. 역시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3 아쉬움은 대학주보로
약간 아쉽습니다. 이제서야 어느 정도 청년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한데... 좀 더... 알 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런 수난을 겪었다면, 대학주보에서 몇 가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느덧 서고보관실에 있던 대학주보 1988년, 1989년, 1990년 묶음이 제 눈앞으로 옮겨져 왔고, 설레이는 마음에 한장한장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찾아본다 했지만, 제가 다 찾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 눈에 보인 기사를 나열해봅니다.
기사를 찾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사진으로 찍었지만, 대학주보 홈페이지에 PDF로 서비스를 해놓았더군요. 사진이 정은 가는데, 깔끔과 가독성은 역시 PDF네요.
1989년 5월 29일자 대학주보 교시탑
처음으로 본 <청년>관련 기사입니다. 학생과 교수간의 다툼이 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다툼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잠시후 다른 기사에서 아주 약간은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1989년 8월 28일자 캠퍼스 표정
위에 있는 5월 29일자 기사 작업대가 무단파손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너울대는 햇살 속 투명한 여름날 끝마친 벽그림이 빨간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되었습니다. 이 훼손은 단순히 시작에 불과했지요.
1989년 9월 11일자 고황만평
페인트통을 들고 있는 한 사람이 보이고, 옥상에는 페인트 통이 놓여져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
1989년 9월 11일자 마당바위
위 만평과 같은 주보 마당바위에 실린 설진덕(철학2)의 글입니다. 이 글을 보면 당시 벽화에 대한 약간의 진행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고황통일제가 한창일때 시작된 벽화작업 전, 설문조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학교측에서 모든 과정이 8천명 중 4천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후 어떻게 조사가 마무리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벽화작업이 진행되었고, 일부 교수님과 학생들이 열띤 논쟁을 벌었으며, 생명을 위협하는 작업방해공작(아마도 작업대 무단파손과 작업대 철사절취 사건), 붉은 스프레이낙서, 그리고 흰페인트 테러(?)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89년 9월 11일자
역시나 같은 그 날, 대책위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엄단, 복구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벽그림사수대책위원장이 박영균(미교4), 앞서 언급한 현재 경희대 미술대학교수인 점입니다.
1989년 9월 25일자
27일까지 벽그림 보수공사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산확보가 어려워 엽서판매와 '국가보안법철폐와 구속 미술인 석박','벽그림사수'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89년 10월 23일자
아마도 예산문제로 당초 27일이 완료목표였던 보수공사가 10월 14일이 되서야 완료가 되었던 듯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주 또 다시 벽그림이 훼손되고 맙니다. 시꺼먼 콜타르였다고합니다.
이때 '검은 피 흘리는 벽그림에 던진 비수가 우리 가슴에 박혀 뜨거운 눈물과 분노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라고 쓰여진 대자보가 나붙었다고 하고(길섶의 미술)...
이후 콜타르를 벗겨내고 페인트를 입히고 방수처리까지 했다고합니다. 이 복구작업때에는 횃불아래서 작업을 하였고, 완성후에는 철사롤로 옥상울 둘러싸는 한편 심야에는 규찰대까지 편성해 주변을 감시했다고(길섶의 미술)...
1999년 2월 22일자
10년동안 잠잠하던 벽화는 다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문리대 외벽공사와 관련해 박병수문리대학장은 '당시 시대상황을 그려낸 것에 불과하며 오늘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고 철거를 대학본부에 요청하지요.
총학생회의 항의방문과 유인물배포 등으으로 결국 학생들과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벽그림을 철거하지 않을 것을 통보받지만 이영우 사무처장이 '추후협의와 공사'를 언급한 것처럼, 신용우 학자추사무국장이 언급한 직접공문등에 대한 유감표명 등 뭔가 찝집합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 99년에서 10년이 지난 2009년 청년벽화는?
10년이 다시 지났습니다. 다행히도 <청년>은 그 자리에 잘 있습니다.
하지만 변한게 있습니다.
요즘(?)지나가는 학생들은 무섭다하고,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제가 일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6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과 민중 세상에 대한 염원을 두 주먹을 불끈 쥔 청년학도의 이미지라는 <청년>벽화가 어느새 '6월', '통일', '민중', '청년'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합니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하지 않거나...
또 하나 변한게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아있으면 지금부터라도 이야기를 하고, 6월을 말하고, 통일을 꿈꾸고, 민중을 고민하고, 청년처럼 살면 됩니다. 2007년 경희대학교에서는 마스터플랜을 발표합니다.
출처 : 경희대학교 대학주보
이 조감도를 보면, 현재 <청년>벽화는 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문과대학이 방향을 틀어 길게 연결되고 정경대학과 터널(?)로 이어지는데, 바로 그 터널자리고 <청년>이 있는 위치입니다.
아름, 쾌적, 21세기를 선도, 학문적 권위 재건, 효율적, 국제화, 글로벌....
그런그런 말들 속에 팔뚝이라 불리는 경희대학교 문리대벽화 <청년>은 어떻게 될까요?
얼마전 다녀온 피맛골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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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반이 지나 갑니다.
바람이나 쐬러 다녀와야 겠습니다.
덧) 제가 1학년때, 한 선배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은 나이가 어려서 청년이 아니라 마음이 푸르러서 청년이라고...
22일. 그날 아침. 멍하게 일어납니다. 만나기로 한 것은 늦은 2시.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 야구경기를 보고 집을 나서면 딱 맞겠다 싶습니다.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도서관에 가자.
가서. 피맛골에 관한 책들을 이왕이면 많이 찾아보고 가자.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 피맛골에 관련된 것이라면...
서른권의 책을 뒤졌습니다.
절반정도가 수필, 시같은 문학작품이었고 그 절반의 절반이 맛집소개하는 책. 그리고 나머지가 사회나 역사에 관한 책과 사진집이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복사를 하고 읽어봅니다.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서른권의 책을 쓴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피맛골은 나의 해방의 공간이고, 추억의 공간이고, 위로의 공간, 아쉬움의 공간이라 말합니다.
회기역에서 경희대지리학과까지 (마을버스편)이었습니다.
이 길은 제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길입니다. 10번중에 8번은 이렇게 가는 듯 싶습니다.
제가 새내기였던 2000년에도 마을버스 2번은 이렇게 달렸었는데요,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몇 개 있습니다.
첫번째로 마을버스가 돈을 받았었습니다. 300원이었던가? 지하철은 정액권을 이용했고요. 그래서 자주타지 않았고 급할때만 타곤했었습니다. 지금은 환승할인이 되어서 뭐 바쁘지 않아도 타는 길이 되었습니다.
두번째로 길이름입니다. 흔히 이 길은 '복관길'이라고 불렀습니다. 복지회관과 경희유치원사이로 난 길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유치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경영대학'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구글지도에는 한창 경영대학을 짓고 있을 때군요. 지금은 '벽돌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는 영상을 보시면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미니슈퍼'ㅋ
음... 이 '미니슈퍼'... 예전에는 지리학과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점이 문을 닫으면 항상 이 곳을 이용했었는데...
지금은 더 가까운 곳에 편의점이 있습니다. 음... 뭐라고 해야할까요...
갑자기 씁쓸해집니다.
이번 걷는 풍경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8걸음마다 사진 한장씩 찍었습니다. 마을버스위에서는 연속촬영(사진기는 파나소닉lx2)을 이용했고, 셔터를 꾸욱하고 계속 누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대략 계산을 해본결과 마을버스 속력을 대략 시속 30km라 가정하면 연속촬영은 약 0.5초당 1장씩 찍어야 8걸음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사진기의 연속촬영이 평균 초당 1장씩인점, 그리고 버스의 진동때문에 셔터를 놓친적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서 지난 걷는풍경_1(한일장골목편)과 직접적인 속도비교는 불가능 할 듯 합니다.
원래 계획은 셔터속도까지 맞춰서 직접적인 속도 비교까지 하려했었지요. 아쉽습니다ㅎ
언제나 자극을 주시는 따끔민수햇님의 블로그에 글하나가 올라왔습니다(http://happygeo.com/tc/79). 사진으로 재현된 공간이라는 걸쭉한 제목의 이 글은 민수햇님의 사진의 재발견, 재해석이라고 바꿔 말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민수햇님의 잠시 잊었던 열정 재발견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괜히 덩달아 저도 마구 힘이 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작업을 해본 저의 생각으로... 디카반과 민수햇님의 중학생친구들의 죽음(?)이라 할 수도...
우선, 함께 고생한 달팽미소, 오랜만에 좋은 것을 가르쳐준 원도걸스와 청천석환, 오류를 찾아준 위액성국과 따닥따닥클릭소리를 참아준 성국현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 작업은 회기역에서 경희대학교 지리학과가 있는 이과대학건물까지 UrbanEarth처럼 8걸음마다 눈높이로 사진을 찍고 이를 프리미어를 이용해 빠르게 연결시킨 것입니다.
회기역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정말 많은데요, 특히 이과대건물은 외대역에서 내리는 것이 더 빠르다라는 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지요.
어쨌든, 저와 달팽미소가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걸은 이 길은 9년전... 제가 새내기일때 하늘같은 94학번 선배가'때로는 마을버스보다 더 빠른 길'이라며 알려준 길입니다. 지리학과의 벗 '한일장(지금은 한일모텔)'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이지요. 물론 지금은 마을버스 편수도 많아졌고 배차간격도 짧아져서 '언제나 마을버스 보다 더 느린 길'이 되어버린 길입니다.
경희대를 찾아오시는 분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으나... 함께 따라 걸으면 재미는 있을 듯 하고...
가까운 미래에는 지도가 이런 느낌이 되겠구나 하고 감상에 빠지기도 하고...
민수햇님의 말처럼 이것이 언젠가 회기역에서 경희대, 그리고 이과대건물의 기록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 이미 경희대에서는 현재 노천극장과 대운동장을 없애고 이과대이전 등 마스터플랜을 계획했지요ㅎ
암튼 작업하는동안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문득... 서울 성곽을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미친(?) 생각을 합니다.
회기사거리로올라오다가 오른쪽골목으로 / 한일장이보이고
곱창나라왼쪽길로 / 그러다보면 나오는 그나마 큰 길에서 BUD와 틈새라면사이 골목으로
메이킹!
덧)
이거 어렵네요. You Tube에 동영상을 올리면 사진한장한장이 다 살지않고, daum에 올리면 마지막 크레딧이 안보이네요. 허허허
살짝 난감합니다.
덧2)
총 241장의 사진, 8걸음... 총 1920걸음...
아... 대충 키가 나오나요? ㅎ
흔히 '3층'이라고 부르던 그곳에... 저렇게 이름이 세겨진 것은 2007년 5월로 기억합니다.
그때 깜짝놀라서 사진을 찍었었거든요.
그때 이후부터... '3층'은 '길쭉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누가 써놓았을까?
하지만 그 써놓았던 사람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합니다.
'3층'은 문리대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포근한... 아니... 많이 친숙한... 음... 마구 끌리는... 중독성있는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언젠가 석사논문을 쓰고 으레 쓰는 '감사의 글'에 '3층'을 쓰려했었으니깐요.
저에게 '3층'이 고마운 장소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처럼... 저 글을 써놓은 친구는 '우연히 만난', '길쭉한', '도시'였나 봅니다. 왜 그런지는 그 친구만이 알겠지요.
우리는 어떤 지역에 대하여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속에서 그 지역은 낯선곳에서 친숙한 곳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떤 지역에 대한 경험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느낌을 장소감이라 합니다. 이러한 장소감은 장소에 대한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Relph, Fritz, Allen등 많은 학자들이 이 장소감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공통적인 것은 모두 장소를 바라보는 인간 주체를 중시하고 있고, 장소감은 사회적 성격보다는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며,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을 띄고 있다는 겁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글을 쓰니깐... 또 '길쭉한 나!의! 도시'가 보고 싶어지네요. 댕겨오겠습니다ㅎ
그런데... 그냥 지구본은... 찝찝하고 해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아기장난감만들기, DIY를 검색하고...
적당한 공을 주문하고...
초등학교 실과시간 이후 실과 바늘을 쥐어본적이 없어 주문한 곳에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문의도 해보고...
ㅎ
결과는...
만들긴 만들었으나... 육지가 서로 맞지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가로로 깁니다. -_-;;; 원단에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옮기는 과정에서 연필을 사용했는데... 나중에 연필선을 지우려고 가볍게 빨고 빨리 말리고 싶어서 전자렌지에 넣었다가... 일부분이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처음한 것이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니깐... 만드는 내내 행복했으니깐...
매우 만족합니다. 비록 돌선물로는 부족하지만...
음...
부족한 부분은 간단한 편지와... 다음에는 진짜 지구볼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채웠습니다.